2017 대통령탄핵

[조선일보 선임기자 최보식 칼럼] 멈출 줄 알아야 위험하지 않다

더 멋진친구 2016. 11. 20. 10:32

 

 

[조선일보 선임기자 최보식 칼럼] 멈출 줄 알아야 위험하지 않다

촛불 들고 나온 사람들만 국민이 아니고 그 외침만 '여론'은 아니다
거리에 나오지 않은 훨씬 더 많은 국민이 있다… 이들은 관망하고 있다

문재인씨나 안철수씨는 지금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애초 '최순실 사건'이 터졌을 때 '하야' '탄핵'이라는 말에 눈치를 봤다. 박근혜 대통령 의혹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럼에도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며 용기백배하는 것은 촛불 집회 덕분이다. 현장에는 '단두대(기요틴)' 모형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형세만 보면 더 큰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만 국민이 아니고 그 외침만 '여론'은 아니다. 거리에 나오지 않은 훨씬 더 많은 국민이 있다. 이들은 관망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대통령을 향한 분노, 배신, 실망감으로 거의 정신적 아노미 상태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통령을 짓뭉개버리는 듯한' 야당의 행태에는 선뜻 동조하지 않는다.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뒷골목 협박은 오히려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을 것이다. 영수 회담을 먼저 제의해놓고 취소하는 야당에 대해서는 '안하무인'을 읽었을 것이다.이는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 못지않게 위험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나는 박근혜를 찍었지만 언론인으로서 비판적 입장에 서 왔다. 현 정권이 출범 팡파르를 막 불 때 '구(舊)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기분'이라는 칼럼을 썼다. 대통령 지지 세력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한 대목을 발췌하면 이렇다.

〈맹목적인 그의 지지자들도 있었지만, 사실 적지 않은 국민은 달리 선택할 수가 없어 그를 찍었다. 흔쾌히 동의해서 찍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의 실력에 미심쩍어하고, 주변 기득권 세력의 발호(跋扈)를 걱정했다. 그럼에도 진영의 논리에 갇혀 어쩔 수 없었다. 일종의 '외통수'였다. 우리는 그의 스타일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주변에 '정확하게' 말하는 비판자를 두려고 하지 않았다. 입속의 혀 같은 굴신(屈身)의 달인들만 가까이에 모였다. 그가 그런 사람들을 원해 왔기 때문이다. 감히 그의 기호에 맞섰던 측근들이 버림받고 밀려난 사실도 알고 있다.〉

어쩌면 대통령 주위에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하는 사람 몇 명만 있었어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선(�線)의 국정 농단을 막을 수 있었던 위치의 청와대 참모나 해당 공직자, 여당 의원들은 잠자코 있었다. 그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 언론의 비판이 있었지만 권력 주위에서는 모두 침묵했다.

대통령이 힘셀 때는 그렇게 한결같이 찬양가를 불러오다가, 이제 와서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쏟아내는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여성이라 생각하는 게 남자들보다 섬세하니 조용히 건의해야 한다"고 했던 JP조차 "최태민이란 반미친놈과 친해가지고 부모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당대표 시절 대통령 앞에서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김무성 의원은 이제 말문이 트인 듯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고 있다.

언론도 들떠 있고 의기양양한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최순실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엄격한 사실 검증 없이 '새누리당' 작명, '통일 대박' 용어, '개성공단 폐쇄' 같은 중요한 결정을 모두 최씨와 연관시킨다. '새누리' 당명(黨名)을 최순실이 정했다는 의혹에, 당시 당 홍보기획본부장이었던 조동원씨는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까지 시시콜콜 들춰내고 풍문을 생산하는 것도 언론 본연의 임무처럼 되고 있다. '성형설' '프로포폴 중독' '굿' '사이비 종교' '애 낳았다' 같은 걸 과감하게 써댄다. 어느 하나 사실로 검증된 적 없지만, 이제 세상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믿게 됐다.

역대 정권마다 친·인척 혹은 비선의 권력형 비리 사건은 반복됐지만, '최태민가(家)'와 얽힌 여성 대통령의 경우는 좀 더 선정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국가의 품격(品格)을 위해 더 이상 안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해 좀 더 냉정하게 접근할 때가 됐다. 야당 지도자들도 나라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는 법이다. 어떻게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마무리하고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의혹과 사실이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게 맞는지, 하야와 탄핵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도 숙고해야 한다.

야당의 한 중견 정치인 은 "국민은 대통령에 대해 비판해도 된다. 하지만 문재인과 안철수가 '퇴진하라'고 무조건 질타할 입장은 아니다. 그들 또한 민주적 정당의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나. 각자 자리에서 그런 각성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문재인씨 등이 거리의 분노에 올라타 자기에게 '기회'가 온 걸로 여기면 국민은 먼저 그걸 알아차린다. 멈출 줄 알아야 위험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