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태극기 인공기 한반도기 열린뜻 신년호

더 멋진친구 2018. 1. 21. 09:44

태극기, 인공기, 한반도기--------------김평일

우리는 우리 태극기에 얼마나 알고 있는지. 국립 박물관의 해전도에 나타난 있는 태극기는 태극기 사용 연대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인지 연대 미상이라 할 수 있으나 문헌에 의한 역사는 아래와 같다.

태극기는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어기(御旗)"태극 팔괘도"를 기본으로 제작되었다. 고종은 태극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 색을 화합시킨 태극을 고종의 롤 모델인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라하여 고안하였으나 태극 즉 동그라미만 있는 도안은 일본의 일장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태극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려 일장기와 구분하자고 하니 태극기 기본이 정해졌다.

18825월 조선-미국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고, 동년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였다. 이에 고종임금은 188336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다.

현재 국기의 이름이 태극기로 된 것은 1942년 임시정부에서 부터이다. 19458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태극기 사용이 자유로워졌고, 태극기는 해방된 조선의 당연한 국기로 인식되어 1946114일 재조선미육군사령부 군정청에서도 태극기를 조선 국기로서 게양하였으니 대한민국정부 수립 2년 반 전이다.

19487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태극기가 대한민국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 이 전엔 태극기는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로 구성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다양한 규격의 태극기가 통용되다가 19491015일 문교부 고시로서 현행과 같은 태극기 규격이 정해졌다. 1950년 무궁화 조형물로 깃봉 제작법 제정, 1984년엔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고, 2007대한민국 국기법이 제정되어 태극기의 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북한엔 인공기가 국기이지만 김일성 소련군 대위가 평양 부시장으로 부임 할 때도 연단 배후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소련군 군정도 태극기를 허용 했었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권 수립 직전 194878일 최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를 인공기(홍람오각별기)로 교체하였다. 인공기는 코민테른 공산당 형제국들은 민족주의를 타파하고 전체 형제국 사람이 하나의 동포라 하여 국민이란 말 대신 세계 1 체성이 있는 인민으로 부르게 되고, 국기도 모두 소비에트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위성이란 뜻으로 별을 넣어 제작하니, 국민 대신 인민이란 말을 쓰고, 별이 그려진 국기를 가진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로 쉽게 식별 되었다. 그러나 정작 소비에트 붉은기는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삼색기로 복원 되었다.

한편 한반도기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에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기를 단기로 제정하여 1990년 아시안 게임부터 응원기로 사용했고, 일본 지바 현에서 개최된 1991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1991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의 단기로 공식 사용되었다.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2002년 아시안 게임, 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2004년 하계 올림픽, 2005년 동아시아 경기 대회, 2006년 동계 올림픽, 2006년 아시안 게임, 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등 여러 스포츠 대회 개막식에서 공동 입장할 때 사용되었다.

정치를 배제한 동포애, 정치를 배제한 스포츠가 평창에서 꽃 피기를 기원한다.

 


출처 : 1964.京畿高.60回卒.막토회
글쓴이 : 화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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