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가 보는 혁명가 박정희

더 멋진친구 2020. 2. 16. 20:44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하버드대학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중국의 덩 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리콴유/싱가포르 수상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예일대학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 등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홍/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部)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 -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 모방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김정일, 1999년, 현대 고 정주영 회장과의 대화중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박정희 같은 지도자는 내가 일찌기 본 적이 없었다 -   린든 존슨 미 대통령


"박정희가 있었기에 한국은 공산권의 마지노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아이젠 하워 미 대통령

 

박정희는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작으며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허버트 험프리 미 부통령

 

박정희의 죽음은 한국에서 일어난 일중 가장 비극적인 일이었다" - 다나카 일본 수상 -


박정희로 인해서 소련의 남한 공산통일의 기틀이 좌절되었다"- 제임스 캘러핸 영국 수상

 

"동남아 국가들은 70년대 한국을 거울로 삼아 경제개발을 해야할 것이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


박정희의 업적은 동남아와 전세계 빈곤국들에게 한가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오히라 일본 총리 -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세계가 보는, 혁명가 박정희"|


얼마 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그 나라 의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임하는 장면을 tv뉴스를 통해 지켜보았다. 그의 조국을 가난에서 탈출시키고자 그가 채택했던 근대화작업의 모델은 소위 ‘마하티르 동방정책’으로 바로 ‘박정희(朴正熙)식 경제개발’이었다. ‘동쪽기적을 배우자’로 풀이되는 이 정책을 펴면서 그는 솔직하게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에 감명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富)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라고 칭찬했다.

중국은 그들의 경제개발 계획에 박정희 정부의 경험을 모델로 삼았다. 한국이 1960년대 초 gnp 82불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에서 단기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해내는 모습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지켜본 외국의 지도자가 어찌 중국이나 마하티르 총리뿐이겠는가. 한국과 비슷한 여건에 놓여있던 당시의 가난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서로 뜻을 같이하는 친밀감과 선의의 경쟁자로 도전의 기회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말레이시아도 21세기 정보화 강국이 되었고, 국민소득 1만 5천불의 선진국 도약을 지표로 2020년까지 달성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성공적인 국가지도자로 알려진 싱가폴의 리콴유 총리도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1979년 10월 16일 한국을 방문하여 19일 청와대 만찬석상에서 말한 바,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정력을 언론과 여론조사로부터 호의적 평가를 받고자 한다’는 것을 비유하면서, 박 대통령은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지도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리콴유가 떠난 1주일 후, 한국은 김재규의 총에 의해 최후를 맞은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충격적인 뉴스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역사에 맡겨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긍정적인 면이 압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때때로 행해진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이름은 역대 대통령 업적 평가에서 최근까지도 한결같이 1위를 차지한다. 「타임지」가 1998년 8월 16일 자 기재한 「20c 아시아 인물 20걸」에서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박정희”였다. 일본 6명, 중국 3명, 인도 3명과 비교하여 그 의미가 더욱 큰 것이다.

그동안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박정희 시대’ 또는 ‘박정희학’에 대한 연구서적이나 논문도 증가 일로에 있다. 그 시대 전반에 걸친 공과(功過)에 대한 분석, 역사의 어느 시대건 있기 마련인 명암(明暗)에 대한 고찰은 앞으로도 폭넓게 이루어질 것이며, 어느 학문처럼 개별적 이념과 성향 그리고 각기 경험에 근거한 주관적 견해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도 하나의 새로운 논쟁으로 수용되는 시대가 되었고, 박 대통령에 대한 것도 마침내는 객관적이며 정당한 평가로 올바르게 역사에 정리되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