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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비엔나1900 관람하다. (1)

더 멋진친구 2025. 1. 5. 07:52

 

이번 전시회는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품 191점이 전시됩니다. 


경천사 십층석탑

 

비엔나1900

 

구스타프 크림트(1862.7.14 ~ 1918.2.6)
19세기말 인상파운동이 시작되었을때 영국이나 프랑스의 미술에 다소 뒤떨어진 오스트리아의 미술의 보수성에 강한 반항이 시작되면서 반 아카데미운동이 일어나고 아르누보미술의 거장이 되었다.구스타프의 작품들은 관능적인 여성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들이 특징이며 실생활 보다는 신비스럽고 정신적인것에 초점을 둔 작품들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그림은 에곤 실레에게 많은 영향을 주며 멘토가 되었다. 

고양이를 안고있는 크림트(1911년작)/구스타프 크림ㅌ의 공식 사진사인 모리츠 네어의 작품

구스타프 크림트/디오니소스제단(1888년 작)

 

구스타프 크림트/엄마와 아기(1905년작)

 

구스타프 크림트/아기요람 (1917년작) 캔버스 유화

 

수풀속의여인/구스타프 크림트(1898년)캔버스유화

 

구스타프 크림트/ 삶 과 죽음(1908~1915년)

 

구스타프 크림트/희망(1907년~1908년)

 

구스타프 크림트 / 키스(1907~1908년)

 

구스타프 크림트/유디트 (1901년)

 

구스타프 크림트/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이작품은 황금빛과 화려한장식들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인데요,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명작중의 명작 이랍니다.

구스타프 크림트/ 구 부르크극장의 내부(1888년작)

 

구스타프 크림트/목가(1884년)

 

                                            구스타프 클림트 ‘헤르미네 갈리아 초상’(1904). 

 

비운의 천재 리하르트 게르스틀(1883~1908년)/ 반신 누드의 자화상'(1902·1904)

 

리하르트 게르스틀/헨리카 콘의 초상(1908년작)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린 로테 프란초스의 초상(1909)

 

오스카 코코슈카/목화솜 따는 소녀(1908년작)

 

                  에곤 실레/소녀의초상(1906년작)/종이에 검은분필과 목탄

 

에곤 실레(1890년 ~ 1918년)

아버지가 매독으로 미쳐서 죽은후 1906년 실레는 클림트도 한 때 다녔던 비엔나의 Kunstgewerbeschule (School of Arts and Crafts)에 들어갔다. 1907년 실레는 클림트를 만나게 되는데, 크림트는 젊은 화가에게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실레는 아카데미에서 3년을 마친 뒤인 1909년에 아카데미를 떠나서, 아카데미에 만족하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 7인회의 Neukunstgruppe (New Art Group)를 결성하였다. 클림트는 1909년 비엔나 Kunstschau에 실레의 작품 몇 개를 출품하도록 초청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에드바르드 뭉크, 얀 투롭,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아카데미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실레는 인간의 모습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sexuality)도 탐구하기 시작한다. 1911년, 실레는 17세인 Walburga (Wally) Neuzil을 만나서 비엔나에서 같이 살게되며, 그녀는 그의 가장 놀라운 작품 중 몇 개의 모델도 하게 된다. 그러나 Wally 에곤의 불안한 생활에 그를 떠나서 다시는 오지 않았다. 이 버림받음으로 인해 그는 '죽음과 소녀'를 그리게 되는데, 1915년 2월 실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유리하게 결혼을 할 예정이다. Wally가 아니라.'라고 했다. Edith의 집안에서 약간의 반대가 있긴 했지만 1915년 6월 17일, 실레의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 Edith와 결혼하게 된다.

절망적인 삶에서 Edith를 만나고 어느정도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것 잠시, 운명의 장닌인가 Edith가

임신6개월때 스페인독감으로 죽고 에곤 자신도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3일후에 스페인독감으로 28세의 젊은나이로 삶을 마감하게된다.그가 남긴 작품은 드로잉을 포함 2000여점 으로 알려진다.

       

 

에곤 실레/원탁(친구들)

          에곤 실레/긴 머리를 한 자화상(1907년작) 생동감 넘치는 이 자화상은 실레 자신을 깊이 있게 표현 하면서도

           내면의 감정을 강열하게 표현 하는듯 하다.

 

에곤실레/자화상 (1910년작)

    

                                 에곤실레/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년작)

 

에곤 실레/자화상 시인 (1911년)캠퍼스에 유화

에곤 실레/스스로를 보는이  또는 죽음과 인간(1911년작)/실레는 이작품에 스스로를 보는 이 와 죽음과인간 이라는 두개의 제목을 붙였다.작품속의 인물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 있고 등뒤에는 또 하나의 자아가 유령처럼 그려져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유령이 인물의 어께를 감싼다.인물의 불안정한상태를 표현했다.손은 그의 감정을 표현한다.

                   

에곤실레  /어머니와 아이(1912년작)

 

에곤 실러/ 가족 (1918년작)/ 원래의 그림은 에곤과 아내만 있었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자 아이를 그려 넣었다.

               

 

    에곤 실레/누워있는 여성(1917년)       

 

              에곤 실러/애도하는여성(1912년작) 패널에 유화

 

  에곤 실러 / 죽음과 여인(1915년작)/ 

 

 클림트가 여성에 대한 욕망을 투영하는 화려한 누드화를 그렸다면, 실레는 과격하고 거침없는 누드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성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바람에 "음란하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다. 모친의 고향인 체코 크룸로프 지역을 그린 '작은 마을Ⅲ'(1913) 등 풍경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건물의 지붕과 도로를 검은 색조로 묘사한 그림은 마치 '죽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에곤 실레/천을 두른 여성의뒷모습(1913년작) 캔버스에 유화

 

에곤 실레/서있는 세여성(1918년 미완성)1918년 에곤 실레가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감하자 미완성으로 남게된 작품임 

 

안톤 클리히/ 소년과 큐피트(1911년작)

 

카를 몰1861~1945/호에바르테의 겨울(1904년작)

 

알빈 에거 리-엔츠/ 점심식사(스프 두번째)

 

클로만 모지/동굴속의 비너스(1868~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