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생활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얼마 전 우연히 소위 ‘고영태 사단’과 가까운 인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편안하게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 말로는 고영태 말고도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이 최순실씨와 가깝다는 겁니다. 아마 최순실씨가 태블릿PC를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주지 않았을까요.”
⊙ “배신자로 오해받고 있으면 박근혜 대통령님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
⊙ 저와 대선 기간 가깝게 지낸 김○○씨 사진 다수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에서 발견된 이유
⊙ 느린 거 싫어한 최순실, 구식 태블릿PC 대선 기간 잠깐 쓰고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줬을 것
⊙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사용자가 김한수 전 행정관과 카톡을 했다고? 최순실은 우리(청와대 관계자들)와 단 한 번도 카톡을 하지 않았다
⊙ 최순실이 태블릿PC 쓰는 것 딱 한 번 봤지만, 그것이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인지는 알지 못해
⊙ 현재, 거짓 탄핵으로 철저하게 지워진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억하자는 취지의 작업 중
그 사람이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편안하게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 말로는 고영태 말고도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이 최순실씨와 가깝다는 겁니다. 아마 최순실씨가 태블릿PC를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주지 않았을까요.”
⊙ “배신자로 오해받고 있으면 박근혜 대통령님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
⊙ 저와 대선 기간 가깝게 지낸 김○○씨 사진 다수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에서 발견된 이유
⊙ 느린 거 싫어한 최순실, 구식 태블릿PC 대선 기간 잠깐 쓰고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줬을 것
⊙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사용자가 김한수 전 행정관과 카톡을 했다고? 최순실은 우리(청와대 관계자들)와 단 한 번도 카톡을 하지 않았다
⊙ 최순실이 태블릿PC 쓰는 것 딱 한 번 봤지만, 그것이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인지는 알지 못해
⊙ 현재, 거짓 탄핵으로 철저하게 지워진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억하자는 취지의 작업 중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씨 것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태블릿PC’는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초기에 중요한 증거 역할을 했다. 당시 JTBC는 “컴퓨터의 파일을 분석한 결과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들을 대통령이 연설하기도 전에 받아 봤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음 날 1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이 태블릿PC에 박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등 정부 문건 50건이 저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순실씨는 검찰조사에서 “태블릿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을 폭로한 고영태는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최씨는 태블릿PC를 쓸 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태블릿PC 주인이 최씨가 맞느냐’는 논란이 커졌다. 태블릿PC가 탄핵 사태를 촉발한 계기가 된 만큼 실제 사용자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당시 검찰은 “태블릿PC는 최씨 것이 맞고 국정 농단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고 했다. 진실의 열쇠인 것처럼 여겨졌던 태블릿PC는 그렇게 ‘최씨 것’이 됐다.
1년의 세월이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도화선 역할을 했던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는 최순실이 아닌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2012년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본부’에서 일했다는 신혜원씨는 《월간조선》(2017년 11월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선캠프에 합류한 뒤 김철균 SNS 본부장의 지시로 조○○ 전 청와대 민원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흰색 태블릿PC 1대를 건네받았고, 이 태블릿PC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카카오톡(카톡) 계정 관리를 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대선 후 이 태블릿PC를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반납했다고 말했다. 이후 태블릿PC 실사용자가 김 전 행정관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검찰 디지털포렌식센터의 〈태블릿PC 분석 보고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태블릿PC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보고서〉에 김 전 행정관이 태블릿PC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 내용이 포함돼 더욱 그랬다. 대선 기간에 김 전 행정관과 가깝게 지낸 김○○씨의 똑같은 사진이 53장이나 나온 게 대표적이다. 김씨는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 SNS본부에서 일했다. 김씨는 최순실씨와 일면식도 없었다. 졸지에 김 전 행정관은 탄핵의 도화선이 되었던 JTBC의 태블릿PC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진영의 ‘공공의 적’이 됐다.
‘김 전 행정관이 태블릿PC를 개통한 김한수 전 행정관과 공모해 함께 사용한 태블릿PC를 JTBC에 제공하고, JTBC는 그 안의 파일을 조작하고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처럼 보도해 아무 잘못 없는 박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갔다’는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전 행정관은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선 때 사용한 태블릿PC를 불에 태웠다고만 밝히고 입을 다물었다. 《월간조선》은 신혜원씨를 인터뷰한 뒤 그 주장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김 전 행정관에게 여러 번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계속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사실상의 침묵은 오해를 증폭시켰다. 김 전 행정관을 잘 아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조차 “‘최순실 태블릿PC’는 최순실이 아닌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사용했고, 이후 김 전 행정관에게 넘겼다”는 신씨의 주장을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 전 행정관에겐 자신을 특별히 믿어준 ‘박 전 대통령 등에 칼을 꼽은 인물’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이런 상태로 2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몇 달 전 우연히 사적인 자리에서 그를 만나게 됐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결국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손사래 치던 김 전 행정관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7월 13일 기자는 김 전 행정관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났다. 김 전 행정관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결심 이유
― 왜 잠적한 겁니까.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가 돼 있더군요. 신혜원씨랑 가까웠어요. 2017년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10월 1일 오전에 신씨에게서 전화가 와서 명절인사 전화인지 알고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씨가 다짜고짜 ‘그때 반납한 태블릿PC 어떻게 했어요?’라고 묻기에 ‘다 폐기(태웠다)했죠’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제가 실소유주일 거라고 인터뷰한 겁니다. 재차 설명했지만 편집된 통화 녹음, 카톡 대화 등을 상의 없이 외부에 공개하는 등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일부 커뮤니티에는 저를 ‘죽여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오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더군요. 신씨 주장이 사실이 아닌 만큼 곧 사그라지려니 했습니다. 제가 대응을 하면 논란이 더욱 증폭될 것 같아 참았죠. 잠적한 것은 아닙니다.”
― 그럼, 왜 이제 나서는 겁니까.
“제 예상과는 다르게 기정사실로 되더군요. 저는 천하에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고. ‘타도 김휘종’을 외치며 뭉치는 애국보수 시민을 보면서, ‘나만 가만히 있으면 대통령님께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더군요. 대통령님께서 여전히 억울하게 감옥에 계시는 걸 보고 결심했습니다. 대통령님을 믿고 끝까지 싸워주는 애국시민들에게 빨리 오해를 푼 뒤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결정을 내린 겁니다. 대통령님 탄핵 열기가 비등점으로 치솟던 2016년 11월 19일부터 모인 태극기 세력이 지금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집회를 여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배신자로서 오해받고 있으면 대통령님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의 실소유자입니까.
“아닙니다. 그 태블릿 PC는 이춘상 보좌관이 김한수 전 행정관에게 시켜 개통한 태블릿PC입니다.”
―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까.
“네.”
― 그런데 왜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에 김 전 행정관의 흔적이 있는 건가요.
“저와 가까운 김○○씨의 똑같은 사진이 53장 나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 그렇습니다.
“2012년 10월 중순부터 대선캠프에서 일하게 된 김○○씨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기획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각 대선 후보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에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근데 발송하기 전 캠프 내부 일부 직원에게 먼저 완성한 콘텐츠를 보내 테스트를 했습니다. 중요한 콘텐츠이니만큼 여러 객관적인 의견을 받아 수정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그 테스트 아이디가 김○○씨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김○○씨의 똑같은 사진이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에 여러 장 등장하는 것일 겁니다. 홍보에 관심이 많았던 최순실씨에게도 콘텐츠를 보냈을 것이고, 당시는 대선 기간이라 최씨가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를 통해 콘텐츠를 확인할 가능성이 컸으니까요. 제가 쓴 태블릿PC라면 똑같은 김○○ 사진이 53장이나 나올 수 없겠죠. 김○○의 다른 사진이나 다른 직원들의 사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순실, 느린 건 질색
― 그럼 신혜원씨가 말하는 태블릿PC는 뭡니까.
“신혜원씨가 대선캠프에서 사용했다는 태블릿PC는 공식 선거비용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무척 바빴던 이춘상 보좌관이 어느 직원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주면서 만들어오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신혜원씨는 김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와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태블릿PC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제가 알기에는 아닙니다. 사실 제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나온 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태블릿PC 영수증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 영수증만 있으면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와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태블릿PC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안타깝게도 영수증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관련 업무를 한 관계자들에게 물으니 대선 후 시간이 많이 지나 다 파기했다고 하더군요.”
― 그럼,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는 최순실 겁니까.
“아마,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는 최순실씨에게 갔을 겁니다. 김한수 전 행정관도 그렇게 말했고요. 대선 기간만 사용할 용도로 말이죠. 최순실씨가 원했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대선 이후에는 안 썼을 겁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에요. 당시 태블릿PC는 초기 모델이라, 아주 느렸거든요. 느린 걸 질색하는 사람이라 아마 좀 쓰다가 주변 사람에게 줬을 겁니다.”
최순실과 카톡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
―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가 최순실씨에게 갔다는 근거가 있나요.
“제가 대선 초기 최순실씨를 만났을 때 태블릿PC 쓰는 것을 보긴 했습니다. 딱 한 번이지만요.”
― 하얀색 모델이었나요.
“솔직히 그건 기억이 안 납니다.”
― JTBC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라고 입수한 것은 흰색이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태블릿PC 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영태가 말한 바로는 최순실은 고영태에게 검은색 태블릿PC를 줬다. 그러니까 김 전 행정관이 봤다는 태블릿PC는 훗날 최순실이 고영태에게 준 검은색 태블릿PC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JTBC가 입수한 소위 흰색 최순실 태블릿PC는 최씨 소유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된다.
―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잘 다룹니까.
“아닙니다. 제가 딱 한 번 봤다고 했잖아요. 그때 무슨 동영상을 보려고 했는데, 동영상을 어떻게 보는지도 잘 모르더군요. 블루투스 스피커도 연결하지 못해서 함께 있던 일행이 도와줬습니다. 동영상을 재생시키지도, 블루투스 스피커도 연결 못 하는 사람이 태블릿PC를 가지고 다니면서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 태블릿PC 사용자 ‘선생님’이 김한수 전 행정관과 ‘하이’라고 카톡 대화를 했다는 이유로 최씨 소유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최순실씨와는 단 한 번도 카톡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할 수도 있겠지만 김 전 행정관이나 저, 그리고 정호성 전 비서관 등과는 절대 카톡을 하지 않았죠.”
최순실씨는 2018년 11월 26일 자필로 쓴 진술서에서 “저는 김한수와 휴대전화로도 카톡을 주고받은 바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줬을 법한 인물 추측
― 느린 거 싫어하는 최순실씨가 구형 태블릿PC를 주변인에게 줬을 것이라 말했는데, 짐작 가는 인물이 있나요.
“(한참 뜸을 들이고) 제 얼굴을 모르잖아요, 사람들이. 사회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얼마 전 우연히 소위 ‘고영태 사단’과 가까운 인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편안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말로는 고영태 말고도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이 최순실씨와 가깝다는 겁니다. 그래서 둘의 사이가 서먹해지고 했다는데. 아마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주지 않았을까요.”
노승일 “JTBC 태블릿PC의 진실에 대해선 손석희 사장이 답해야”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인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2018년 3월 10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승일은 ‘JTBC의 태블릿PC는 어떻게 된 것인가요. 최순실·박근혜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요’라는 《경향신문》 기자의 질문에 “JTBC 태블릿PC는 어디에서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2016년 10월 27일 영태가 귀국하자마자 오산에 주차한 영태 차에 있는 짐에서 검찰에 제출할 자료를 영태더러 챙기라 했어요. 짐에 검은색 삼성 태블릿PC가 있는데 빼놓길래, 뭐냐고 했더니, ‘최순실에게 받은 건데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다’고 했어요. 저는 ‘24일 JTBC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더블루K의 네 책상 속에서 나왔다고 보도했으니 넣으라’고 했죠. 영태는 자기는 그 책상을 8월에 이미 정리했고, 거기에 두고 나온 것은 디지털카메라 하나밖에 없었다며 펄쩍 뛰었어요. 영태는 ‘나도 증거를 모은다고 모으던 놈인데 왜 책상에 태블릿PC처럼 중요한 것을 남겨놓고 오겠냐’고 했어요.”
노승일은 “당시 영태는 자기가 실제 사용하는 태블릿PC는 애플이라고 했다”며 나중에 박헌영 K 스포츠재단 과장이 청문회에서 말한 ‘(고씨가) 충전 잭을 구해오라’고 했던 것도 삼성 기기가 아니라 애플 기기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게 고씨의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JTBC 손석희 사장과 김필준 기자는 이 태블릿을 2016년 10월 18일 고영태 책상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노승일은 김필준 기자가 더블루K의 핵심 실무자인 박헌영과 2016년 10월 18일 몇 주 전부터 함께 술을 마시고 다닌 사이라는 점도 폭로했다.
노승일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앞서 박헌영 과장이 JTBC 김모 기자와 접촉해서 JTBC 〈뉴스룸〉에서 ‘일방적 해산 결정에… K스포츠 직원들, 비대위 구성’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2016년 10월 4일 나갔어요. 여러 언론에 K스포츠재단 등의 의혹이 계속 나오니까 최순실이 반박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에요. 그날 강지곤 차장이 K스포츠재단을 대표해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했어요. 보도가 나간 후 박헌영 과장은 김 기자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취한 채로 사무실에서 잤어요. 노광일(더블루K 건물 관리인) 선생님이 10월 18일 문을 열어준 JTBC 기자도 박 과장이 방송보도를 위해 접촉하고 같이 술도 마신 김 기자였어요.”
노승일의 발언은 ‘JTBC가 2016년 10월18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더블루K의 존재를 알았고, 김필준을 급파해 그가 혼자서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건물 관리인이 JTBC 광팬이었다. 관리인이 김필준에게만 문을 열어줘, 고영태 책상에서 태블릿PC를 발견했다’는 알리바이를 깨부술 수도 있다. 김필준과 더블루K의 핵심인물 박헌영은 10월 2일부터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다녔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10월18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더블루K의 존재를 알았다는 JTBC의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승일은 “JTBC 태블릿PC의 진실에 대해선 손석희 사장이 답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쌓은 김일환의 손자
김 전 행정관은 김일환(金一煥) 전 장관의 손자다. 김 전 장관은 제1공화국 시절 이승만 대통령 옆에서 국방부 차관을 거쳐 4·19 직전까지 상공부·내무부·교통부 장관을 역임했다. 제1공화국 붕괴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려로 국제관광공사 총재,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김 전 행정관은 태블릿PC 오해로 인해 ‘배신자’로 낙인찍힌 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후견인의 손자’라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았다. 한 주간지의 오보가 발단이었다. 2014년 10월 7일 한 주간지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후견인을 자처했던 고 김일환 장군의 직계 후손이 현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8일 사단법인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은 김휘종 행정관을 즉각 파면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다. 안두희 후견인을 자처했던 인물은 인천 특무대장 출신인 김일환(金日煥)이었다. 김일환(金一煥)과 김일환(金日煥)을 혼동한 것이다. 김 전 행정관은 “할아버지 김일환(金一煥)은 인천 특무대장을 역임한 적이 없으며, 김구 선생이 돌아가실 때(1949년 전후) 국방부 제3국장을 역임했다”며 주간지와 사단법인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에 정정을 요청했다. 두 군데 모두,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해 해당 기사와 글이 삭제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터넷상에 남아 있던 전혀 사실이 아닌 기사와 글을 근거로 김 전 비서관을 비난했다. ‘할아버지는 김구를, 손자는 박근혜를 죽이는 데 가세했다’는 논리였다.
― 마음고생이 컸겠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죄송했죠, 친척에게도. 제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어쨌든 저 때문에 억울하게….”
― 정치권에서 활동한 인사로는 특이하게 연극영화과(한양대)를 나왔습니다.
“네, 꿈이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죠.”
― 혹시 할아버지의 명성으로 정치권에서 일하게 된 겁니까.
“아닙니다.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 김일환 전 장관은 박정희 정권 때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역임하셨던데, 이 인연으로 박근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것 아닌가요.
“제가 최순실씨를 알게 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돕게 된 상황은 뒤에 자세히 설명할게요. 할아버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 말씀을 하셔서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라서요. 할아버지 생신 날이었어요.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관련한 어떤 행사에서 케이크 커팅 시간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케이크가 고리 1호기 모양이라 커팅하기를 주저하셨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님 이건 부수는 게 아니라 두 조각, 네 조각 자르는 만큼 원자력발전소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마음놓고 자르시라고 했더니, 그제야 케이크를 잘랐다. 그게 참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뇌리에 깊이 남았죠.”
― 이런 이야기를 박근혜 전 대통령한테 전한 적 있나요.
“우연히 기회가 왔죠. 2014년인가 마침 근접 경호원이 뭘 가지러 가 잠깐 둘만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색하지 않게 할아버지 말씀을 해드렸죠. 대통령님이 큰 반응 없이 그랬냐고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납니다.”
최순실과의 우연한 만남
― 좀전에 최순실씨를 알게 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신다고 했죠.
“제가 91학번인데, 졸업하기 한 3개월 전인가 어느 프로덕션 회사에서 조연출(AD·Assistant Director)로 아르바이트를 했죠. 영화감독이 꿈이었으니까요. 3개월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사람 섭외해서 촬영하고 편집만 했는데 쳇바퀴 도는 듯해서 당시에는 너무 재미없더라고요. 그래서 영상감독 꿈을 접었죠. 전부터 인터넷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니 IMF 때라 취업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가, 닷컴기업(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비롯, 인터넷 도메인 주소 자체를 회사명으로 내세운 수많은 인터넷 사업체)에 취업하게 됐죠. 저는 영상도 알고 인터넷도 아는 직원이었죠. 그러다가 취업한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여기 팀장이 자기 회사를 차린다고 일하자고 해서 같이 했습니다. 그때(2000년) 대구 달성에서 ‘인터넷 농업방송국’을 만든다고 입찰을 했는데 우리 회사가 사업을 땄습니다. 나름 잘 만들었는데, 그게 소문이 났는지 곧장 육영수 여사 홈페이지 건을 수주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춘상 보좌관을 처음 만나게 됐죠.”
그가 말을 이었다.
“육영수 여사 홈페이지 사업을 잘 마무리 지었는데, 그 직후 회사가 문을 닫게 됐습니다. 당시는 인터넷 관련 업체가 많이 생겼다 또 금방 사라지던 시기였죠. 전 백수로 집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이춘상 보좌관이더군요. 이 보좌관 하는 말이 육영수 여사 홈페이지의 영상 부분에 손볼 게 있는데,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우리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하니 ‘개인이 하면 가격이 더 저렴하지 않겠느냐’면서 저에게 영상 수정을 요청했죠. 제가 일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2001년 이 보좌관이 한 유치원 원장을 소개해줬는데 그게 최순실씨였습니다. 최씨는 몬테소리(놀이치료 프로그램)를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틀어주는 몬테소리 유아 방송국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씨가 사업 수완이 대단했습니다. 2001년도에 유튜브 채널 같은 걸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니까요. 그때부터 최씨가 운영하는 ‘초이유치원’에 직원으로 입사해 몬테소리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최씨의 수완에 대해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 관계자는 “최순실이 조언했다는 연설문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큼 쉬웠다”고 했다.
― 당시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처음 만났을 땐 몰랐는데,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죠. 유치원 선생님들이 저한테 혹시 최태민 목사(최씨 선친) 아느냐고, 원장님이 그 사람 딸이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최태민 목사가 누군지 몰랐죠. 어른들만 아는 게 있나 보다 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으니까요. 그러다 최태민 목사가 누군지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됐죠.”
이춘상 전 보좌관은 사수 같은 존재
― 2001년부터 최씨와 함께 일했다면 그녀의 성격에 대해서도 잘 알겠네요.
“저는 (최씨를) 편안하게 대했습니다. 서로 농담도 많이 하고. 최씨는 유치원 선생님들과도 편하게 지냈어요.”
― 그러다 최씨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소개받은 건가요.
“대통령님께서 2002년 탈당 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는데, 그 작업을 돕게 됐습니다. 최씨의 요청으로 홈페이지 개설과 홍보 같은 일을 했죠. 그때는 초이유치원의 동영상 제작은 거의 끝난 상태였는데, 영상이 생각보다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회원이 늘지 않았습니다.”
―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들은 한국미래연합 창당 준비 당시 알게 됐겠네요.
“그렇죠.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은 이춘상 보좌관이고요. 이춘상 보좌관과는 많이 친했습니다. 저에게는 ‘사수(師授)’ 같은 존재였죠.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부인에게 알린 것도 저입니다. 대선 때 사용한 태블릿PC(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와는 별개)를 불에 태웠다고 하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해합니다. 제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의 실소유주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태웠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언론사에 제보했다고 의심하겠죠. 하지만 태운 건 사실입니다. 대선 후 이춘상 보좌관님 자리에서 나온 물품은 제가 정리했습니다. 부인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니, 가족사진 같은 것 등 몇 가지만 빼고 남은 것은 버리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중요한 건 부인께 전해드리고 나머지(태블릿PC, USB, 자료, 수첩 등)는 박스에 넣은 뒤 제 차 트렁크에 넣어놨죠. 그 짐을 청와대 사무실에 가져갈 수도 없고 해서 오랫동안 차 트렁크에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집 가는 길(파주) 공사장에서 파기했습니다. 큰 드럼통에 불을 지피고 있기에 거기에 넣었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제가 오해받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춘상 전 보좌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이 될 때부터 도운 ‘최측근 보좌그룹 4인’ 중 한 명이다. 2012년 대선 경선 및 본선 캠프에서 박 전 대통령의 홍보 및 SNS 메시지 관리 등을 맡았다. 이 전 보좌관은 2012년 12월 2일 오후 강원도 인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운 뒤 선대위 홍보팀 관계자들과 함께 카니발 승합차로 다음 유세장인 춘천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TV 조선’이 입수한 사고 당시 영상에 따르면, 이 전 보좌관이 탄 차량은 2차선으로 운행하고 있었고, 뒤에 당 소속 지원팀 차량이 따라가고 있었다. 뒤따르던 차가 갑자기 오른쪽 갓길로 빠져 추월을 시도하는 순간, 사고 차량도 동시에 갓길 쪽으로 틀면서 두 차량이 엉켰다.
이 전 보좌관이 탄 차는 과속카메라가 설치된 기둥을 들이받았고, 뒤따르던 차는 기둥을 스치고 지나가 정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 전 보좌관의 빈소를 찾아 “어려운 때를 같이 (이 보좌관과) 극복해왔는데 한순간 그렇게 갑자기…”라며 울먹였다. 생전 이 전 보좌관은 “박근혜 의원을 모시는 게 내 운명인 것 같다”고 자주 말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
―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박 전 대통령을 도왔나요.
“제가 2003년 결혼한 뒤 아내와 계획한 긴 여행을 가기 위해 (박 전 대통령 관련) 일을 그만뒀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2003년 친구랑 홍대에 카페를 열었는데 말아먹었죠. 2004년에 마침 쉬고 있는데 이춘상 보좌관이 또 전화를 준 겁니다. ‘뭐 하고 있느냐’고. 쉬고 있다고 하니, 잘됐다고 하면서 다시 와서 일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아내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고 해서 다시 대통령님 관련 일을 했습니다.”
2011년 김 전 행정관은 박근혜 의원실 7급 비서로 임명됐다. 2010년 5급 비서관 1명을 증원하는 법안이 통과하면서다. 정식으로 ‘박근혜 의원 보좌진’이 된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후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2급(홍보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까지 달았다.
박근혜, 업적 기록하는 작업 중
김 전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을 정확히 15년(2002~2017)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영상 촬영, 편집, 사진촬영, 연설문 정리 등이 그의 역할이었다. 김 전 행정관은 거짓 탄핵으로 철저하게 지워진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본인이 보관하는 동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박근혜영상창고’ 채널과 ‘LIKE PP_박대통령처럼’ 채널이다.
‘박근혜영상창고’에는 한 번 이상 홈페이지 등에 올라왔던 박 전 대통령의 영상을 하루 한 편씩 올린다. ‘LIKE PP_박대통령처럼’에는 ‘박근혜영상창고’에 올린 영상 중 현 상황과 맞는 영상을 편집해서 시기적절하게 등록하고 있다. 김 전 행정관은 “정파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박 대통령님의 업적을 헐뜯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G20 회담 때 공식 회의 참석을 거의 안 했다는 ‘G20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야당까지 나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하자 청와대가 ‘가짜 뉴스’라며 발끈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안 보인 시간에는 모두 양자 회담을 했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문 대통령은 행사 7건 중 4건에 불참했는데 양자 회담이 그 시간과 약간 겹치지만, 공식 행사에 아예 참석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 전 행정관은 ‘LIKE PP_박대통령처럼’에 ‘누구와 달리 G20에서도 존재감 폭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동영상을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이 G20회의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담은 3분6초짜리 동영상은 현재(7월 14일) 조회수가 20만(19만5433회)회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4개 외국어를 구사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 역시 많은 관심(7월 14일 현재 조회수 10만4246건)을 얻고 있다. 동영상에는 어떤 정상회의에서 어느 정상을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소통 외교를 실천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담겼다.
“박 전 대통령님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신 건 모든 걸 떠나 저를 비롯한 보좌진의 잘못 때문입니다. 태블릿PC를 비롯해 잘못된 모든 것이 바로잡혀 대통령님의 명예가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오해가 풀린다면 저도 그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김 전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을 호칭할 때 ‘님’자를 꼭 붙였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만큼 ‘연기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심도 해봤다. 하지만 김 전 행정관을 여러 번 만나면서 느끼고, 확인한 점은 그가 은인이나 다름없는 박 전 대통령을 배신할 명분이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최순실씨는 검찰조사에서 “태블릿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을 폭로한 고영태는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최씨는 태블릿PC를 쓸 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태블릿PC 주인이 최씨가 맞느냐’는 논란이 커졌다. 태블릿PC가 탄핵 사태를 촉발한 계기가 된 만큼 실제 사용자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당시 검찰은 “태블릿PC는 최씨 것이 맞고 국정 농단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고 했다. 진실의 열쇠인 것처럼 여겨졌던 태블릿PC는 그렇게 ‘최씨 것’이 됐다.
1년의 세월이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도화선 역할을 했던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는 최순실이 아닌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2012년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본부’에서 일했다는 신혜원씨는 《월간조선》(2017년 11월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선캠프에 합류한 뒤 김철균 SNS 본부장의 지시로 조○○ 전 청와대 민원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흰색 태블릿PC 1대를 건네받았고, 이 태블릿PC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카카오톡(카톡) 계정 관리를 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대선 후 이 태블릿PC를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반납했다고 말했다. 이후 태블릿PC 실사용자가 김 전 행정관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검찰 디지털포렌식센터의 〈태블릿PC 분석 보고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태블릿PC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보고서〉에 김 전 행정관이 태블릿PC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 내용이 포함돼 더욱 그랬다. 대선 기간에 김 전 행정관과 가깝게 지낸 김○○씨의 똑같은 사진이 53장이나 나온 게 대표적이다. 김씨는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 SNS본부에서 일했다. 김씨는 최순실씨와 일면식도 없었다. 졸지에 김 전 행정관은 탄핵의 도화선이 되었던 JTBC의 태블릿PC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진영의 ‘공공의 적’이 됐다.
‘김 전 행정관이 태블릿PC를 개통한 김한수 전 행정관과 공모해 함께 사용한 태블릿PC를 JTBC에 제공하고, JTBC는 그 안의 파일을 조작하고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처럼 보도해 아무 잘못 없는 박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갔다’는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전 행정관은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선 때 사용한 태블릿PC를 불에 태웠다고만 밝히고 입을 다물었다. 《월간조선》은 신혜원씨를 인터뷰한 뒤 그 주장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김 전 행정관에게 여러 번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계속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사실상의 침묵은 오해를 증폭시켰다. 김 전 행정관을 잘 아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조차 “‘최순실 태블릿PC’는 최순실이 아닌 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사용했고, 이후 김 전 행정관에게 넘겼다”는 신씨의 주장을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 전 행정관에겐 자신을 특별히 믿어준 ‘박 전 대통령 등에 칼을 꼽은 인물’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이런 상태로 2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몇 달 전 우연히 사적인 자리에서 그를 만나게 됐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결국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손사래 치던 김 전 행정관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7월 13일 기자는 김 전 행정관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났다. 김 전 행정관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결심 이유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은 “대통령님을 믿고 끝까지 싸워주는 애국시민들께 빨리 오해를 푼 뒤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첫 언론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고 했다. 2019년 3월 10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파면 선고를 받은 지 2년이 되는 날, 서울역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무죄 석방 국민운동본부’ 주최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다. |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가 돼 있더군요. 신혜원씨랑 가까웠어요. 2017년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10월 1일 오전에 신씨에게서 전화가 와서 명절인사 전화인지 알고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씨가 다짜고짜 ‘그때 반납한 태블릿PC 어떻게 했어요?’라고 묻기에 ‘다 폐기(태웠다)했죠’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제가 실소유주일 거라고 인터뷰한 겁니다. 재차 설명했지만 편집된 통화 녹음, 카톡 대화 등을 상의 없이 외부에 공개하는 등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일부 커뮤니티에는 저를 ‘죽여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오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더군요. 신씨 주장이 사실이 아닌 만큼 곧 사그라지려니 했습니다. 제가 대응을 하면 논란이 더욱 증폭될 것 같아 참았죠. 잠적한 것은 아닙니다.”
― 그럼, 왜 이제 나서는 겁니까.
“제 예상과는 다르게 기정사실로 되더군요. 저는 천하에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고. ‘타도 김휘종’을 외치며 뭉치는 애국보수 시민을 보면서, ‘나만 가만히 있으면 대통령님께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지는 게 없더군요. 대통령님께서 여전히 억울하게 감옥에 계시는 걸 보고 결심했습니다. 대통령님을 믿고 끝까지 싸워주는 애국시민들에게 빨리 오해를 푼 뒤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결정을 내린 겁니다. 대통령님 탄핵 열기가 비등점으로 치솟던 2016년 11월 19일부터 모인 태극기 세력이 지금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집회를 여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배신자로서 오해받고 있으면 대통령님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의 실소유자입니까.
“아닙니다. 그 태블릿 PC는 이춘상 보좌관이 김한수 전 행정관에게 시켜 개통한 태블릿PC입니다.”
―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까.
“네.”
― 그런데 왜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에 김 전 행정관의 흔적이 있는 건가요.
“저와 가까운 김○○씨의 똑같은 사진이 53장 나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 그렇습니다.
“2012년 10월 중순부터 대선캠프에서 일하게 된 김○○씨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기획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각 대선 후보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에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근데 발송하기 전 캠프 내부 일부 직원에게 먼저 완성한 콘텐츠를 보내 테스트를 했습니다. 중요한 콘텐츠이니만큼 여러 객관적인 의견을 받아 수정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그 테스트 아이디가 김○○씨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김○○씨의 똑같은 사진이 소위 최순실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에 여러 장 등장하는 것일 겁니다. 홍보에 관심이 많았던 최순실씨에게도 콘텐츠를 보냈을 것이고, 당시는 대선 기간이라 최씨가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를 통해 콘텐츠를 확인할 가능성이 컸으니까요. 제가 쓴 태블릿PC라면 똑같은 김○○ 사진이 53장이나 나올 수 없겠죠. 김○○의 다른 사진이나 다른 직원들의 사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순실, 느린 건 질색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은 “최순실은 느린 걸 누구보다 싫어한다”며 “소위 최순실 태블릿PC는 대선 기간 잠깐 쓰고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신혜원씨가 대선캠프에서 사용했다는 태블릿PC는 공식 선거비용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무척 바빴던 이춘상 보좌관이 어느 직원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주면서 만들어오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신혜원씨는 김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와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태블릿PC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제가 알기에는 아닙니다. 사실 제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나온 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태블릿PC 영수증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 영수증만 있으면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와 대선캠프에서 사용한 태블릿PC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안타깝게도 영수증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관련 업무를 한 관계자들에게 물으니 대선 후 시간이 많이 지나 다 파기했다고 하더군요.”
― 그럼,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는 최순실 겁니까.
“아마, 김한수 전 행정관이 개통한 태블릿PC는 최순실씨에게 갔을 겁니다. 김한수 전 행정관도 그렇게 말했고요. 대선 기간만 사용할 용도로 말이죠. 최순실씨가 원했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대선 이후에는 안 썼을 겁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에요. 당시 태블릿PC는 초기 모델이라, 아주 느렸거든요. 느린 걸 질색하는 사람이라 아마 좀 쓰다가 주변 사람에게 줬을 겁니다.”
최순실과 카톡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
2017년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에 최순실씨가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법정에 앉아 있다. |
“제가 대선 초기 최순실씨를 만났을 때 태블릿PC 쓰는 것을 보긴 했습니다. 딱 한 번이지만요.”
― 하얀색 모델이었나요.
“솔직히 그건 기억이 안 납니다.”
― JTBC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라고 입수한 것은 흰색이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태블릿PC 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영태가 말한 바로는 최순실은 고영태에게 검은색 태블릿PC를 줬다. 그러니까 김 전 행정관이 봤다는 태블릿PC는 훗날 최순실이 고영태에게 준 검은색 태블릿PC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JTBC가 입수한 소위 흰색 최순실 태블릿PC는 최씨 소유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된다.
―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잘 다룹니까.
“아닙니다. 제가 딱 한 번 봤다고 했잖아요. 그때 무슨 동영상을 보려고 했는데, 동영상을 어떻게 보는지도 잘 모르더군요. 블루투스 스피커도 연결하지 못해서 함께 있던 일행이 도와줬습니다. 동영상을 재생시키지도, 블루투스 스피커도 연결 못 하는 사람이 태블릿PC를 가지고 다니면서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 태블릿PC 사용자 ‘선생님’이 김한수 전 행정관과 ‘하이’라고 카톡 대화를 했다는 이유로 최씨 소유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최순실씨와는 단 한 번도 카톡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할 수도 있겠지만 김 전 행정관이나 저, 그리고 정호성 전 비서관 등과는 절대 카톡을 하지 않았죠.”
최순실씨는 2018년 11월 26일 자필로 쓴 진술서에서 “저는 김한수와 휴대전화로도 카톡을 주고받은 바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줬을 법한 인물 추측
― 느린 거 싫어하는 최순실씨가 구형 태블릿PC를 주변인에게 줬을 것이라 말했는데, 짐작 가는 인물이 있나요.
“(한참 뜸을 들이고) 제 얼굴을 모르잖아요, 사람들이. 사회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얼마 전 우연히 소위 ‘고영태 사단’과 가까운 인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편안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말로는 고영태 말고도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이 최순실씨와 가깝다는 겁니다. 그래서 둘의 사이가 서먹해지고 했다는데. 아마 고영태 또는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에게 주지 않았을까요.”
노승일 “JTBC 태블릿PC의 진실에 대해선 손석희 사장이 답해야”
고영태 사단 중 한 명인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2018년 3월 10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승일은 ‘JTBC의 태블릿PC는 어떻게 된 것인가요. 최순실·박근혜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요’라는 《경향신문》 기자의 질문에 “JTBC 태블릿PC는 어디에서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2016년 10월 27일 영태가 귀국하자마자 오산에 주차한 영태 차에 있는 짐에서 검찰에 제출할 자료를 영태더러 챙기라 했어요. 짐에 검은색 삼성 태블릿PC가 있는데 빼놓길래, 뭐냐고 했더니, ‘최순실에게 받은 건데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다’고 했어요. 저는 ‘24일 JTBC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더블루K의 네 책상 속에서 나왔다고 보도했으니 넣으라’고 했죠. 영태는 자기는 그 책상을 8월에 이미 정리했고, 거기에 두고 나온 것은 디지털카메라 하나밖에 없었다며 펄쩍 뛰었어요. 영태는 ‘나도 증거를 모은다고 모으던 놈인데 왜 책상에 태블릿PC처럼 중요한 것을 남겨놓고 오겠냐’고 했어요.”
노승일은 “당시 영태는 자기가 실제 사용하는 태블릿PC는 애플이라고 했다”며 나중에 박헌영 K 스포츠재단 과장이 청문회에서 말한 ‘(고씨가) 충전 잭을 구해오라’고 했던 것도 삼성 기기가 아니라 애플 기기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게 고씨의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JTBC 손석희 사장과 김필준 기자는 이 태블릿을 2016년 10월 18일 고영태 책상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노승일은 김필준 기자가 더블루K의 핵심 실무자인 박헌영과 2016년 10월 18일 몇 주 전부터 함께 술을 마시고 다닌 사이라는 점도 폭로했다.
노승일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앞서 박헌영 과장이 JTBC 김모 기자와 접촉해서 JTBC 〈뉴스룸〉에서 ‘일방적 해산 결정에… K스포츠 직원들, 비대위 구성’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2016년 10월 4일 나갔어요. 여러 언론에 K스포츠재단 등의 의혹이 계속 나오니까 최순실이 반박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에요. 그날 강지곤 차장이 K스포츠재단을 대표해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했어요. 보도가 나간 후 박헌영 과장은 김 기자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취한 채로 사무실에서 잤어요. 노광일(더블루K 건물 관리인) 선생님이 10월 18일 문을 열어준 JTBC 기자도 박 과장이 방송보도를 위해 접촉하고 같이 술도 마신 김 기자였어요.”
노승일의 발언은 ‘JTBC가 2016년 10월18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더블루K의 존재를 알았고, 김필준을 급파해 그가 혼자서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건물 관리인이 JTBC 광팬이었다. 관리인이 김필준에게만 문을 열어줘, 고영태 책상에서 태블릿PC를 발견했다’는 알리바이를 깨부술 수도 있다. 김필준과 더블루K의 핵심인물 박헌영은 10월 2일부터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다녔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10월18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더블루K의 존재를 알았다는 JTBC의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승일은 “JTBC 태블릿PC의 진실에 대해선 손석희 사장이 답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쌓은 김일환의 손자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할 때부터 탄핵 직전까지 15년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2002년 4월 26일 열린 한국미래연합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의원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 마음고생이 컸겠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죄송했죠, 친척에게도. 제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어쨌든 저 때문에 억울하게….”
― 정치권에서 활동한 인사로는 특이하게 연극영화과(한양대)를 나왔습니다.
“네, 꿈이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죠.”
― 혹시 할아버지의 명성으로 정치권에서 일하게 된 겁니까.
“아닙니다.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 김일환 전 장관은 박정희 정권 때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역임하셨던데, 이 인연으로 박근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것 아닌가요.
“제가 최순실씨를 알게 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돕게 된 상황은 뒤에 자세히 설명할게요. 할아버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 말씀을 하셔서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라서요. 할아버지 생신 날이었어요.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관련한 어떤 행사에서 케이크 커팅 시간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케이크가 고리 1호기 모양이라 커팅하기를 주저하셨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님 이건 부수는 게 아니라 두 조각, 네 조각 자르는 만큼 원자력발전소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마음놓고 자르시라고 했더니, 그제야 케이크를 잘랐다. 그게 참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뇌리에 깊이 남았죠.”
― 이런 이야기를 박근혜 전 대통령한테 전한 적 있나요.
“우연히 기회가 왔죠. 2014년인가 마침 근접 경호원이 뭘 가지러 가 잠깐 둘만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색하지 않게 할아버지 말씀을 해드렸죠. 대통령님이 큰 반응 없이 그랬냐고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납니다.”
최순실과의 우연한 만남
― 좀전에 최순실씨를 알게 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신다고 했죠.
“제가 91학번인데, 졸업하기 한 3개월 전인가 어느 프로덕션 회사에서 조연출(AD·Assistant Director)로 아르바이트를 했죠. 영화감독이 꿈이었으니까요. 3개월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사람 섭외해서 촬영하고 편집만 했는데 쳇바퀴 도는 듯해서 당시에는 너무 재미없더라고요. 그래서 영상감독 꿈을 접었죠. 전부터 인터넷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니 IMF 때라 취업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가, 닷컴기업(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비롯, 인터넷 도메인 주소 자체를 회사명으로 내세운 수많은 인터넷 사업체)에 취업하게 됐죠. 저는 영상도 알고 인터넷도 아는 직원이었죠. 그러다가 취업한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여기 팀장이 자기 회사를 차린다고 일하자고 해서 같이 했습니다. 그때(2000년) 대구 달성에서 ‘인터넷 농업방송국’을 만든다고 입찰을 했는데 우리 회사가 사업을 땄습니다. 나름 잘 만들었는데, 그게 소문이 났는지 곧장 육영수 여사 홈페이지 건을 수주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춘상 보좌관을 처음 만나게 됐죠.”
그가 말을 이었다.
“육영수 여사 홈페이지 사업을 잘 마무리 지었는데, 그 직후 회사가 문을 닫게 됐습니다. 당시는 인터넷 관련 업체가 많이 생겼다 또 금방 사라지던 시기였죠. 전 백수로 집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이춘상 보좌관이더군요. 이 보좌관 하는 말이 육영수 여사 홈페이지의 영상 부분에 손볼 게 있는데,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우리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하니 ‘개인이 하면 가격이 더 저렴하지 않겠느냐’면서 저에게 영상 수정을 요청했죠. 제가 일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2001년 이 보좌관이 한 유치원 원장을 소개해줬는데 그게 최순실씨였습니다. 최씨는 몬테소리(놀이치료 프로그램)를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틀어주는 몬테소리 유아 방송국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씨가 사업 수완이 대단했습니다. 2001년도에 유튜브 채널 같은 걸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니까요. 그때부터 최씨가 운영하는 ‘초이유치원’에 직원으로 입사해 몬테소리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최씨의 수완에 대해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 관계자는 “최순실이 조언했다는 연설문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큼 쉬웠다”고 했다.
― 당시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처음 만났을 땐 몰랐는데,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죠. 유치원 선생님들이 저한테 혹시 최태민 목사(최씨 선친) 아느냐고, 원장님이 그 사람 딸이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최태민 목사가 누군지 몰랐죠. 어른들만 아는 게 있나 보다 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으니까요. 그러다 최태민 목사가 누군지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됐죠.”
이춘상 전 보좌관은 사수 같은 존재
김휘종 전 행정관에게 고 이춘상 전 보좌관은 사수와 같은 존재다. 2006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전 보좌관. |
“저는 (최씨를) 편안하게 대했습니다. 서로 농담도 많이 하고. 최씨는 유치원 선생님들과도 편하게 지냈어요.”
― 그러다 최씨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소개받은 건가요.
“대통령님께서 2002년 탈당 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는데, 그 작업을 돕게 됐습니다. 최씨의 요청으로 홈페이지 개설과 홍보 같은 일을 했죠. 그때는 초이유치원의 동영상 제작은 거의 끝난 상태였는데, 영상이 생각보다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회원이 늘지 않았습니다.”
―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들은 한국미래연합 창당 준비 당시 알게 됐겠네요.
“그렇죠.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은 이춘상 보좌관이고요. 이춘상 보좌관과는 많이 친했습니다. 저에게는 ‘사수(師授)’ 같은 존재였죠.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부인에게 알린 것도 저입니다. 대선 때 사용한 태블릿PC(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와는 별개)를 불에 태웠다고 하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해합니다. 제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의 실소유주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태웠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언론사에 제보했다고 의심하겠죠. 하지만 태운 건 사실입니다. 대선 후 이춘상 보좌관님 자리에서 나온 물품은 제가 정리했습니다. 부인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니, 가족사진 같은 것 등 몇 가지만 빼고 남은 것은 버리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중요한 건 부인께 전해드리고 나머지(태블릿PC, USB, 자료, 수첩 등)는 박스에 넣은 뒤 제 차 트렁크에 넣어놨죠. 그 짐을 청와대 사무실에 가져갈 수도 없고 해서 오랫동안 차 트렁크에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집 가는 길(파주) 공사장에서 파기했습니다. 큰 드럼통에 불을 지피고 있기에 거기에 넣었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제가 오해받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춘상 전 보좌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이 될 때부터 도운 ‘최측근 보좌그룹 4인’ 중 한 명이다. 2012년 대선 경선 및 본선 캠프에서 박 전 대통령의 홍보 및 SNS 메시지 관리 등을 맡았다. 이 전 보좌관은 2012년 12월 2일 오후 강원도 인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운 뒤 선대위 홍보팀 관계자들과 함께 카니발 승합차로 다음 유세장인 춘천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TV 조선’이 입수한 사고 당시 영상에 따르면, 이 전 보좌관이 탄 차량은 2차선으로 운행하고 있었고, 뒤에 당 소속 지원팀 차량이 따라가고 있었다. 뒤따르던 차가 갑자기 오른쪽 갓길로 빠져 추월을 시도하는 순간, 사고 차량도 동시에 갓길 쪽으로 틀면서 두 차량이 엉켰다.
이 전 보좌관이 탄 차는 과속카메라가 설치된 기둥을 들이받았고, 뒤따르던 차는 기둥을 스치고 지나가 정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 전 보좌관의 빈소를 찾아 “어려운 때를 같이 (이 보좌관과) 극복해왔는데 한순간 그렇게 갑자기…”라며 울먹였다. 생전 이 전 보좌관은 “박근혜 의원을 모시는 게 내 운명인 것 같다”고 자주 말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
―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박 전 대통령을 도왔나요.
“제가 2003년 결혼한 뒤 아내와 계획한 긴 여행을 가기 위해 (박 전 대통령 관련) 일을 그만뒀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2003년 친구랑 홍대에 카페를 열었는데 말아먹었죠. 2004년에 마침 쉬고 있는데 이춘상 보좌관이 또 전화를 준 겁니다. ‘뭐 하고 있느냐’고. 쉬고 있다고 하니, 잘됐다고 하면서 다시 와서 일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아내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고 해서 다시 대통령님 관련 일을 했습니다.”
2011년 김 전 행정관은 박근혜 의원실 7급 비서로 임명됐다. 2010년 5급 비서관 1명을 증원하는 법안이 통과하면서다. 정식으로 ‘박근혜 의원 보좌진’이 된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후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2급(홍보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까지 달았다.
박근혜, 업적 기록하는 작업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회원국 및 국제기구·초청국 대표들이 2013년 9월 6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콘스탄틴 궁전 앞에 단체 기념촬영을 위해 모였다. 김휘종 전 행정관은 거짓 탄핵으로 철저하게 지워진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G20과 같이 본인이 보관하는 동영상과 사진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
‘박근혜영상창고’에는 한 번 이상 홈페이지 등에 올라왔던 박 전 대통령의 영상을 하루 한 편씩 올린다. ‘LIKE PP_박대통령처럼’에는 ‘박근혜영상창고’에 올린 영상 중 현 상황과 맞는 영상을 편집해서 시기적절하게 등록하고 있다. 김 전 행정관은 “정파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박 대통령님의 업적을 헐뜯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G20 회담 때 공식 회의 참석을 거의 안 했다는 ‘G20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야당까지 나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하자 청와대가 ‘가짜 뉴스’라며 발끈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안 보인 시간에는 모두 양자 회담을 했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문 대통령은 행사 7건 중 4건에 불참했는데 양자 회담이 그 시간과 약간 겹치지만, 공식 행사에 아예 참석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휘종 전 행정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한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는 유튜브 채널인 ‘LIKE PP_박대통령처럼’. |
최근에는 ‘대통령이 4개 외국어를 구사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 역시 많은 관심(7월 14일 현재 조회수 10만4246건)을 얻고 있다. 동영상에는 어떤 정상회의에서 어느 정상을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소통 외교를 실천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담겼다.
“박 전 대통령님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신 건 모든 걸 떠나 저를 비롯한 보좌진의 잘못 때문입니다. 태블릿PC를 비롯해 잘못된 모든 것이 바로잡혀 대통령님의 명예가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오해가 풀린다면 저도 그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김 전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을 호칭할 때 ‘님’자를 꼭 붙였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만큼 ‘연기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심도 해봤다. 하지만 김 전 행정관을 여러 번 만나면서 느끼고, 확인한 점은 그가 은인이나 다름없는 박 전 대통령을 배신할 명분이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